2025. 1. 6. 17:38ㆍ카테고리 없음
백설 공주의 일곱 난쟁이가 있다면, 나에게는 일곱 조카들이 있다. 우리 가족은 매년 1월과 6월, 두 차례 전체 모임을 갖는다. 특히 1월 1일은 어머니의 생신이라 더욱 특별한 날이다. 이날이면 누나들과 조카들, 그리고 이제는 조카의 자녀들까지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나에게는 이제 손주뻘 되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때면 세월의 흐름이 새삼 실감 난다. 2025년 새해 첫 주말, 스무 명이 넘는 식구들이 한 집에 모였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하며 나누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는 특별히 조카들과 한 상에 앉아 그들의 근황과 고민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각자의 삶의 무게를 지고 살아가는 조카들의 이야기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것 같았다.
첫째 조카는 여자아이로, 지금은 헤어 디자이너가 되었다. 나와는 단 3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어릴 적부터 남다른 추억이 많다.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건, 네 살배기 때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울면서 떼를 쓰던 모습이다. 어린 나이에 뉴스를 본다며 고집을 부리던 그 모습이 지금도 웃음을 자아낸다. 조카는 23살의 어린 나이에 동대문 시장을 누비며 남다른 사업 수완을 보여줬다. 새벽녘 동대문 시장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옷을 사입하고, 이를 매장에 공급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늘 열정적이었다. 당시 그녀의 눈빛에서 반짝이던 야망이 선명히 기억난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수익을 쏙쏙 내는 모습은 가족들에게 놀라움과 부러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2006년 여름밤이었다. 조카의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 시작한 게 저녁 무렵이었는데, 이야기꽃이 피어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다. 고기 굽는 연기와 소주 한 잔에 취해 밤새도록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이 생생하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면 그녀만의 독특한 주사가 있는데,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냥 집에 가라'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충격적이었지만, 이제는 재미있는 일화로 회자된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피곤한 발걸음을 옮겼던 기억은, 그때의 패기 넘치던 청춘의 우리를 느끼게 해 준다. 이제 성숙한 헤어 디자이너로 거듭났지만, 여전히 솔직하고 당찬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어엿한 전문가가 되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아동복 사업을 하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 손님으로부터 받은 컴플레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한 듯했다. 그래도 그 고집 센 성격 덕분인지,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여전했다.
둘째 조카는 이제 여덟 살 된 아들을 둔 아버지다. 겨울방학이면 우리 집에 와서 베란다와 방문 사이를 골대 삼아 탱탱볼로 축구를 하던 그 장난꾸러기가, 이제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는 우락부락한 체격에 마동석을 빼닮았다. 20대 때 엑스트라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사업을 시작할 때 영업직으로 스카우트했다. 이게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난감했다. 특히 그의 '깊은 잠'은 정말 문제였다. 알람을 듣지 못해 아침 회의에 늦는 일이 다반사였고, 급기야 중요한 거래처 납품에도 지각한 적이 있었다. 큰 누나의 아들이라고 봐주지 않고 호되게 혼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은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 거래처에서도 '믿음직한 청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점차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갔다. 영업 현장에서 배운 경험을 토대로 창업을 준비하더니, 이제는 대표가 되었다.
몇 달 전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삼촌, 덕분에 먹고 산다'라는 말을 했다. 예전에 알람 소리를 못 듣던 그가 이제는 일찍 나와 하루를 시작한다고 한다. 한때 엑스트라로 출연하던 청년이 이제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연으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삼촌으로서 가슴이 뿌듯하다. 최근 전세 사기를 당해 큰 걱정거리가 생겼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고 있다. 화분을 깨뜨려 혼이 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그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보였다.
셋째 조카는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때로는 생각이 없어 보일 정도로 순수하고, 그 누구에게도 악의를 품지 않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다. 하지만 그런 밝은 성격에도 불구하고 아직 솔로라는 게 안타깝다. 특히 몇 년 전에는 누나의 친구가 자신의 딸을 소개하고 싶어 했던 일이 있었다. 누나의 인품을 보고 꼭 사돈을 맺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중매를 서려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식당 영업시간이 밤 9시로 제한되었을 때였는데, 그는 '코로나 규제가 풀리면 꼭 만나보겠다'라고 했다가 그대로 흐지부지됐다. 내가 답답한 마음에 '내가 대신 연락해 줄까?'라고 했더니 '삼촌, 내가 연락할게!'라고 하고는 끝내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게임 아이템을 모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아이템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웹툰과 게임에 빠져 현실의 소중한 인연들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의 순수함이 삭막한 세상에서 빛나는 미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지키면서 하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가족들이 모이면 그의 웃음거리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만큼 꾸밈없는 웃음소리는 아이의 웃음만큼 해맑다. 인생의 소중함은 잃어가도, 맑은 천성만큼은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젠가는 그의 순수함을 이해해 주고 받아들여줄 수 있는 좋은 인연이 나타나길 기대해 본다.
넷째 조카는 강원도 인제 3 포병여단의 상사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가족 모임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기가 쉽지 않다. 셋째와 형제지간이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말수가 너무 없어서 때로는 그가 모임에 왔는지조차 모를 정도다.
15년 전 포항 가족여행에서 그의 숨겨진 모습을 보았다. 그날 가족들과 포항 바닷가에서 하루를 즐겼다. 대게와 회를 먹으며 조카들과 술을 마셨다. 소주 30병을 비운 자리의 주역 중 한 명이 바로 넷째 조카였다. 평소의 조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밤이 깊어갈수록 말수가 늘어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우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지금은 2살 배기 아들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최근에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왔다. 특히 작은 누나가 경상도 경산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딸을 갈망해 왔기에, 이번에는 꼭 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한다. 말은 적지만 가족을 향한 그의 사랑은 누구보다 깊다. 군인이 된 후로도 가끔 태권도 대회에 나가 입상을 한다. 전성기 때 이름에 '동'자가 들어가 동메달만 따니 '금'자로 개명해야 한다며 드물게 농담을 했다. 조용한 겉모습과 달리 강인한 군인이자, 자상한 아버지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이 보기 좋다. 말이 적어도 가족들 모두가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그의 조용한 성격은 목소리가 큰 우리 가족에서는 오히려 특별한 매력이다
다섯째 조카는 공군 전역 후 관제탑 교육을 받고 있다. 내가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이 조카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다. 퇴근을 해 집에 있으면 조카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같이 먹었다. 특히 다섯째는 먹을 것에 대한 행복감이 남달랐다. 한 번은 내가 사준 피자와 치킨을 과하게 먹어 결국 응급실에 실려 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때부터 '많이 먹으면 탈이 난다'는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다며 지금도 웃곤 한다. 그 시절, 조카들 덕분에 내가 뽀로로라는 캐릭터를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이게 뭐가 재미있다고...' 하며 의아해했는데, 세월이 흘러 내가 아빠가 되고 나서는 뽀로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만큼 외우게 되었다.
최근에는 골프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레슨을 받아서인지 기본자세가 빠르게 잡혀가고 있다. 이 조카의 기특한 점은 자신의 진로를 스스로 결정하고 준비해 나가는 모습이다. 공군에서 복무하면서 항공관제에 관심이 생겼고, 전역 후에도 그 길을 이어가기 위해 관제탑 교육을 받고 있다. 많은 청년들이 진로를 고민할 때 주변의 의견에 휘둘리기 쉬운데,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명확히 알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 피자를 너무 많이 먹어 탈이 났던 그 순수한 아이가, 이제는 자신의 길을 당당히 개척해 나가는 어른이 되어있다. 삼촌으로서 그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자랑스럽다.
여섯째 조카는 특유의 따뜻함을 간직한 아이다. 아이들과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25살이 된 지금도 우리 집에 오면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본다. 예전에 내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그 작은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늘 '오빠들 등살에 기를 못 폈다', '막내 동생한테 관심이 쏠려 이쁨을 못 받고 자랐다'며 투정 섞인 하소연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조카들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 같다. 특히 중학생 시절까지도 매형이 안아주고 뽀뽀해 주며 예뻐했던 조카는 못 봤다. 대부분 청소년들이 부모의 스킨십을 어색해할 때도, 그는 여전히 매형 품에 안겨 응석을 부렸다. '우리 딸' 하면서 매형이 안아주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여섯째는 특유의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 가족들 앞에서는 '사랑 못 받았다'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그 투정조차도 받아줄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시절의 순수한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던 그 꼬마가 이제는 제법 숙녀가 되어있다.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면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투정 부리면서도 늘 밝게 웃는 그 아이가 앞으로도 이런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길 바란다."
막내 조카는 현재 군 복무 중이다. 특별히 내가 훈련받았던 인제 12사단에서 복무하고 있어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그 아이의 우수에 찬 처진 눈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부모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어릴 적 그 아이가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이런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었다. 통통한 볼살에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누나에게 생글생글 웃으며 개구쟁이 짓을 하던 모습이 귀여웠다. 특히 누나 앞에서 짓궂은 장난을 치다가도, 혼날 것 같으면 금세 쪼르르 도망가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막내라서 이쁨을 받으며 자랐지만, 힘센 형과 기 센 누나 사이에서 자신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웃으면서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던 그 아이가, 이제는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 있다. 입대 전에 제대로 된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눈 것이 못내 아쉽다. 그래도 군대라는 작은 사회를 경험하면서, 그동안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목소리를 찾게 되리라 믿는다. 처진 눈으로 늘 주변 눈치를 보던 아이가 아닌, 당당한 청년으로 성장해서 돌아올 그날이 기대된다. 우리 막내의 군 생활이 단순한 의무가 아닌, 진정한 성장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날 밤,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크린 골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군대에 있는 막내와 감기로 빠진 여섯째를 제외하고 모두가 참여했다. 첫째 조카는 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였고, 둘째와 넷째가 한 팀을, 셋째와 다섯째가 다른 팀을 이뤄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박빙의 승부 끝에 셋째 조카네 팀이 승리했다. 귀갓길에 들른 술집에서 우리는 그 승부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가족 모임은 단순히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함께 운동을 하고 승부를 겨루며 느끼는 즐거움과 유대감은 가족을 더욱 돈독하게 만든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순간들이, 우리 모두에게 삶의 원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다.
가족들과 시끌벅적하게 지내다가 다음 날이면 늘 공허함이 밀려온다. 일상의 규칙적인 템포가 한번 흔들리고,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곤 한다. 하지만 괜찮다. 이 공허함이 가족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게 해 주니까. 가끔 만나 안부를 묻고, 함께 게임을 하며 나누는 정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일곱 조카들을 보면서, 나는 다음 만남을 기대해 본다. 때로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서로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따뜻한 가족이 있다. 1월과 6월, 일 년에 두 번 맞이하는 이 특별한 날들이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힘이 되어주길 바란다. 다가올 6월의 만남을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이 행복한 공허함을 소중히 간직한다.
"흑설 왕자와 일곱 조카들"
첫째는 헤어 디자이너, 고집 센 그녀
동대문 새벽 시장 누비던 청춘의 열정
삼겹살에 술 한 잔, 밤새워 나눈 이야기
이제는 꿈을 이룬 당찬 그녀의 미소
둘째는 마동석 닮은 사업가 조카
알람도 못 듣던 그가 이제는 대표
화분 깨뜨리던 아이가 아버지 되어
어깨에 책임감을 무겁게 짊어지고
셋째는 순수한 영혼의 게이머
웹툰과 게임에 빠진 동심의 주인공
인생의 소중한 아이템도 잊어버린 채
맑은 웃음소리만 해맑게 퍼뜨리네
넷째는 포병여단의 조용한 군인
말없이 지키는 가족의 등불처럼
포항 바닷가의 술자리 추억 속에
이제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다섯째는 관제탑 꿈꾸는 청년
피자 먹다 응급실 실려 갔던 아이
뽀로로 노래를 들려준 그 시절엔
나는 몰랐지, 내가 아빠가 될 줄은
여섯째는 동물과 아이를 사랑하는
투정 부리며 사랑받지 못했다 하지만
아빠의 품에서 가장 많은 사랑받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의 숙녀
막내는 지금 군복 입은 청년
우수에 찬 눈빛이 내 마음 적시네
통통한 볼살로 장난치던 그 시절
이제는 나라 지키는 자랑스러운 군인
일 년에 두 번 하나 되는 우리들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이야기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을 가족의 정
떠나고 난 뒤의 공허함마저
그리움으로 채우는 가족의 사랑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는 일곱 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미소 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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