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형 가족 1편] A형 아빠가 바라본 우리 가족 이야기

2024. 12. 17. 17:18A형 가족 (절대 소심하지 않아)

 

 

에필로그 : 내가 바라본 우리 가족의 초상

 

시계는 어김없이 아침 6시를 가리킨다. 늘 그렇듯 나는 조용히 일어나 노트북 전원을 켠다. 하루 일과를 준비한다.노트북이 켜지는 시간동안 물 한잔 마시러 방을 나선다. 거실 소파에서 잠들어 있는 호두가 부스스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본다. 이제는 이런 아침 풍경이 익숙해졌다. A형 특유의 규칙적인 생활,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행복.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의 일상이다.

 

아내를 처음 만난 건 2011년 여름이었다. 중학교 동창 친구가 연락이 왔다. 자신의 회사 동료를 소개해 주겠다는 연락이었다. 며칠 후, 선부동의 한 닭갈비 집으로 나를 불렀다. 지금도 그 거리를 지날 때면 그날이 떠오른다.

 

나는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눈 화장에 한껏 멋을 부린 여자가 들어왔다. 닭갈비 먹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어색함은 금세 사라졌다. 식사 후 근처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2시간 동안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날 출근이라는 이유로 아쉽게 일찍 헤어졌다.

이틀 후, 그녀의 집 근처로 찾아갔다. 바비큐 치킨을 먹으며 편하게 대화하였다. 처음 느낌과는 달리 수다스럽고 편안한 성격이었다. 나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더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다음 데이트 코스를 고민하였다.

 

세 번째 만나면 결정해야한다. 그것은 만남의 매너라 생각한다. 두 번째 만남 이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나는 술독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마침 술에 지쳐갈 때쯤 그녀를 만난 것이다. 나중에 아내는 내가 술을 자주 마신다는 사실을 숨겼었다고 농담 삼아 투정을 부리곤 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술을 줄이게 된 것도 모두 그녀 덕분이었다. 술 대신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그 시간들이 지금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여전히 그 닭갈비 집은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되어있다. 그 거리를 지날 때면 그날을 회상한다. 그날 아내의 짙은 화장이 부담스러웠다고 이야기한다.  아내는 “당신은 유행을 모른다며” 웃는다.

 

그녀는 내 성격을 잘 알았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나의 특성을 이해해 주며 좋아해 주었다.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채고, 살며시 챙겨주는 그녀의 배려심이 참 고마웠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보완하며 연애를 이어갔고, 2012년 3월 18일 결혼을 했다. 만난 지 8개월 만의 결혼이었다. 주위에서는 속도위반을 의심했다. 우리 아이는 결혼한 지 11개월 만에 정상적인 속도로 태어났다. 

 

작은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각자 30년 넘게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다 결혼을 했다. 두 사람이 갑자기 한 공간에서 살게 되니, 생활습관의 차이가 있었다. 서로 고집하는 방식이 부딪히며 서로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균형을 찾아갔다. 그렇게 2개월이 지났을 때, 우리는 첫 아이를 기다리게 되었다.

 

아내의 입덧이 시작되었다. 나는 표현이 서툴러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마음으로 위로했다. 퇴근 후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주었다. 이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로를 배려하며 보낸 시간이 흘렀다. 2013년 2월 17일 우리의 첫째 아이 윤우가 태어났다.

 

작고 여린 윤우를 처음 안았을 때 감동은 지금도 생생하다. 낯선 아빠의 역할이 처음엔 두려웠다. 아들이 내 손가락을 꼭 쥐고 잠들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나를 꼭 빼닮았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물론, 혼자 중얼 거리는 것까지도 닮았다. 가끔은 너무 내성적인 아들이 걱정되기도 하다. 아내는 나처럼 착하고 섬세한 아이로 자랄 거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15년, 우리에게 딸 윤슬이가 찾아왔다. 첫째 아들을 키우면서 익숙해진 육아였지만, 딸아이를 키우는 건 또 다른 설렘과 기쁨이었다. 아들이 태어났을 때는 '잘 키워야지'하는 책임감이 컸다. 하지만 딸은 '예쁘게 키워야지'하는 달콤한 상상이 앞섰다.

 

내 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아들과는 또 다른 예쁨이 있다. 연약하고 보드라운 느낌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나를 닮은 눈매는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을 때,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한 번은 딸에게 아빠를 닮았다고 하니 대성통곡하며 운 적이 있다. 서운함보다 그저 귀여울 뿐이었다.

 

지금 우리 딸은 밝고 활발한 아이로 자라났다. 나만 보면 "돼지야 안녕~" 하고 달려와 안긴다. 작은 팔로 내 목을 감싸 안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내 방에 붙어있는 딸아이의 그림을 보면 피로가 사라진다. 서툰 글씨채로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그림들이 내 마음속에도 예쁘게 물들어간다. 가끔은 이렇게 예쁜 딸을 두었다는 게 꿈만 같다.

 

2023년 1월, 우리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이 된 호두. 고등학교 후배와 술자리에서 시작된 인연이었다.  "형, 혹시 강아지 키울 곳 없나요?"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아내가 결혼 전 키우던 '봄비'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우리가 아들을 낳자 봄비를 챙겨주지 못했다. 더 이상 봄비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 아내는 미안함에 한 동안 TV에서 애견 채널을 보지 않았다. 무심코 아내에게 호두 사진을 보냈다. 사진을 보고 와이프가 키우는 것을 허락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후배 집에 가서 호두를 데려왔다. 

 

갈색 말티프 호두는 우리 가족을 닮아 소심한 성격이다. 애견카페에 가도 다른 강아지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우리 가족 주위만 맴도는 모습이 A형 가족을 빼닮았다. 호두는 현관문 도어락 소리만 들어도 짖어댄다. 처음에는 그 습관이 불쾌해서 혼냈었다. 그런데 딸아이가 "아빠, 호두는 반가워서 그런 거야"라고 말했다. 그 뒤로는 반가움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호두를 진짜 동생처럼 대한다. 무뚝뚝한 아들은 가끔 호두한테 물린다. 아들은 호두가 혼날까 봐 물린 걸 말하지 않는다. 딸은 매일 아침 호두의 눈을 들여다보며 "귀여워~"라고 말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새 호두는 우리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퇴근 후의 저녁 시간은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시간이다. 비록 대화는 많지 않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 아들은 책을 읽고, 딸은 그림을 그린다. 아내는 아이들 학습을 도와준다. 호두는 늘 그렇듯 소파에서 졸고 있다. 이런 조용한 저녁 시간이 우리 가족의 일상이자 행복이다.

 

지난 주말 우리는 작은 나들이를 갔다. 딸이 좋아하는 다이소 쇼핑을 하고 근처 공원을 산책을 갔다. 말은 많지 않아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호두와 함께하는 산책은 더욱 특별했다. 아이들은 호두와 함께 뛰어놀며, 나와 아내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걷는다. 이런 소소한 일상이 쌓여 우리만의 특별한 추억이 되어간다.

 

매일 아침, 나는 감사메모를 작성한다. 건강한 아이들, 이해심 많은 아내,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호두까지. 비록 말로 표현하진 못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게는 큰 축복이다. 우리 가족은 완벽하지 않다. 때로는 서로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순간조차도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A형 아빠로서, 나는 우리 가족의 조용한 일상이 좋다. 화려하지 않아도, 시끌벅적하지 않아도 좋다. 이렇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던 가족의 모습이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이렇게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함께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의 평화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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