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기다리는 이유

2025. 1. 21. 17:39하루하루 에세이

오늘도 내 오래된 친구는 바람을 기다린다. 그의 말에는 떠돌이 구름처럼 흘러가는 삶의 불안과, 어딘가에 뿌리내리고 싶은 희망이 공존했다. 그의 고백은 마치 오래된 일기장을 펼쳐보는 것처럼 나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한다.
 
학창 시절부터 그는 남다른 꿈을 지닌 친구였다. 다른 이들은 안정적인 직장과 평범한 일상을 꿈꾸었다. 원하는 대학을 꿈꾸는 이들도 있었다. 그는 대학은 의미 없고, 평범함은 지루하다 했다. 그는 늘 새로운 도전을 갈망했다.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는 영혼이었다. 그 속에서 특별한 빛을 발하는 친구였다.
 
그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흘러다니고 싶어 했다. 단순한 방황이 아닌 끊임없는 성장을 향한 여정이었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실패를 하면서 그는 성장했다. 그의 패기는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정신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마흔이 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때 그 청년이 살아있다. 그는 지금 여러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정착하려 멈춰 서지만, 여전히 새로운 바람을 기다린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바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까?  어떤 이는 안정을 위해, 또 어떤 이는 변화를 위해. 바람을 맞으며 단단해지는 나무처럼.
 
나도 한때는 바람이었다. 스무 살의 가벼운 꿈을 안고 훨훨 날아오르고 싶어 했고, 서른을 앞두고는 안정을 찾아 이리저리 흔들렸다. 정착하고 싶은 마음과 더 멀리 가보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나는 끊임없이 망설였다. 그렇게 멈춰 선 자리에서는 망설임만 쌓여갔다. 

스무 살의 나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한 권의 책만 읽고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았고, 자전거 하나로 전국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배낭 하나 메고 전 세계를 누빌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서른이 되면 내 명함 한 장으로 세상을 움직일 것 같았다. 나의 야망은 현실의 벽 앞에서 타협만 하고 있었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짐들이 하나둘 어깨를 짓눌렀다. 안정된 직장, 내 집 마련, 결혼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들이 우리의 날개를 무겁게 만들었다. 하지만 가슴 한켠에는 더 멀리 날아가고 싶은 젊은 영혼이 살아있었다.
 

 
삶이란 때로는 구름과 같다. 그래서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며 흘러간다. 거대한 산이 되었다가, 포근한 양떼가 되기도 한다. 그 구름이 결국은 비가 되어 땅에 내린다. 그렇게 새로운 생명을 피워낸다. 친구가 말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끊임없이 변화하며 모습을 만들어간다. 한 자리에 머무르지 못하는 것이 불안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구름은 비가 되어 대지에 스며든다.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도 어느덧 4개의 사업체를 운영중이다. 정처 없이 떠도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들이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되었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가 단단해지듯, 방황이 있었기에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원치 않는 곳에 머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조차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역경 속에서 뿌리 더 깊이 내려갔다. 
 
오늘도 친구는 바람을 기다린다. 그 바람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른다 했다. 어디서든 그는 분명 자신만의 꽃을 피울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