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구원자의 선택

2024. 12. 11. 23:25데스티니(사람의 운명은 만들어진다.)

천사 가브리엘

 

천상의 결단

수정궁전의 거대한 회의장은 

7일째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빛의 기록자의 수천 개의 눈을 가진 

날개가 불안하게 떨렸고, 

그의 순백의 펜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젊은 희망의 씨앗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매일 수천 명의 영혼들이 절망 속에 

저승으로 오고 있어요. 

그들을 구해야 합니다!"

정의의 수호자는 불꽃 검으로 

허공에 영상을 그려냈다. 

지옥의 세력들이 이미 이승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이었다. 

달콤한 속삭임이 굶주린 자들에게 계약을 제안하고, 

환멸재판관이 절망에 빠진 이들의 영혼을 

거두어가는 광경이 생생했다.

생명의 치유자는 그의 꽃잎을 떨구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법도를 어기면...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어질 수 있어요."

 

 

바로 그때, 

수정궁전의 최상층에서 강렬한 빛이 내리쬐었다. 

대천사 미카엘의 등장이었다. 

그의 일곱 쌍의 황금빛 날개는

 회의장 전체를 밝게 비추었다.

"우리에게는 다른 선택이 있습니다."
미카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 명을 보내는 것입니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강력한 자를..."

모든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회의장 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가브리엘을 향해서였다. 

수정처럼 투명한 그의 날개 속에는 

무지개빛 광채가 흐르고 있었다. 

빛의 기록자가 두루마리를 펼쳤다.
"가브리엘은 창세 이래 단 한 번도 

영혼을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죄 많은 영혼조차 이해하려 했죠."

"그는 우리 중 유일하게 지옥에 떨어진 영혼을 

위해 눈물을 흘린 천사입니다."
정의의 수호자가 덧붙였다.

 


미카엘이 가브리엘 앞에 섰다.
"당신은 알고 있겠지요? 

이승에 내려간다면, 

당신의 힘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합니다. 

진정한 정체도 숨겨야 하죠."

가브리엘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제가 가겠습니다. 

단 하나의 영혼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순간 그의 투명한 날개가 강렬하게 빛났다. 

천천히 그 빛이 사그라들며, 

가브리엘의 모습은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에 담긴 

깊은 연민과 사랑은 그대로였다.

 



이승으로의 여정

가브리엘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기근으로 인해 바다는 메말랐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마을을 거닐었다. 

그의 발자취를 따라 마른 땅에 이슬이 맺히고, 

시든 꽃들이 다시 피어났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기적은 따로 있었다.

"할아버지, 이 물고기 나눠 드세요."
길가에 쓰러진 노인을 향해 

마지막 물고기를 내어주는 소년을 보며, 

가브리엘은 미소지었다. 

그가 살짝 손을 들자, 

소년의 빈 바구니에 물고기가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소년은 놀라서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다.
"이상하다... 분명 마지막 한 마리였는데..."

가브리엘은 조용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의 기적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누군가의 선한 행동에 대한 작은 보답처럼, 

마치 우연을 가장한 기적들이었다.

점차 마을에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에요. 그 낯선 사람이 

지나간 우물에서 다시 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어제는 시든 보리밭이 

하룻밤 만에 푸르게 변했대요."

하지만 가브리엘은 결코 자신이 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다.

"서로를 사랑하세요. 나누세요. 

이웃을 돌보세요. 

그때 더 큰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어둠의 움직임

지옥에서는 이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환멸재판관의 집무실에서 긴급회의가 열렸다.

"저자는 분명 평범한 인간이 아닙니다."
달콤한 속삭임이 말했다.
"우리의 계약을 방해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더 이상 우리의 제안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운명서기관은 검은 잉크로 무언가를 적어내렸다.
"하지만 이것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인간들은 늘 그래왔죠.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구원자를 배신할 것입니다."

환멸재판관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럼 우리도 움직여볼까요?"

 

 

첫 번째 시험은 마을의 권력자들로부터 시작됐다. 

달콤한 속삭임은 그들의 귓가에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

"저자가 민심을 장악하고 있소. 

당신들의 권위가 위협받고 있지 않습니까?"


"그의 기적이라는 것들... 

정말 순수한 의도일까요?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는 걸까요?"

마을의 지도자들은 가브리엘을 불러들였다.
"당신의 정체가 궁금하오. 

어디서 왔으며,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있는 건가요?"

가브리엘은 평온하게 답했다.
"저는 그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함께하시죠. 

당신의 능력으로 우리 마을을 

더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하는 일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죠."

권력자들의 시험을 물리쳤지만, 

더 큰 도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환멸재판관은 이번에는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가 정말 너희를 돕고 있는가? 

작은 기적들로 너희를 달래고 있을 뿐이야. 

진정한 변화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 사이에 불만이 일기 시작했다.
"왜 우리 모두를 한 번에 구해주지 않는 거죠?"
"그에게는 그런 힘이 있을 텐데..."

가브리엘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는 원한다면 단번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용된 방법이 아니었다. 

인간들 스스로가 변화해야 했다.

 

 

 

진실된 마음

"제가 일시적으로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해결책일까요? 

여러분의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그럼 우리가 뭘 어쩌란 말입니까?"
"말씀만으로는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아요!"

바로 그때, 

한 소녀가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가브리엘이 처음 만났던 소년의 여동생이었다.


"오빠가 그날 물고기를 나눠준 뒤로, 

우리 집 바구니는 항상 물고기로 가득해요. 

그리고 우리가 그 물고기를 나눌 때마다, 

더 많은 물고기가 생겨났어요."


소녀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점차 마을 사람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서로 나눌 때마다 기적같은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우물을 함께 파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들이 파는 곳마다 물이 솟아났다. 

서로의 밭을 돕는 이들이 많아졌고, 

그들의 작물은 더욱 풍성해졌다.

하지만 지옥의 세력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이제 마지막 카드를 써야 할 때군요."
환멸재판관이 말했다.
"그의 정체를 폭로하는 겁니다."

달콤한 속삭임은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 속삭였다.
"그는 천사입니다.

당신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거예요.

왜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있을까요?"

 

소문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사람들은 가브리엘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우리를 속이고 있었던 거예요!"
"왜 처음부터 정직하지 않았죠?"
"당신이 천사라면, 

그 능력을 보여주세요!"

가브리엘의 앞에 분노한 군중이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그동안 그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도 있었다.

돌을 든 사람들도 있었다.

"증명해보시오! 

당신이 정말 천사라면, 

지금 당장 그 날개를 펼쳐보이시오!"


가브리엘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가 원한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찬란한 빛으로 모든 이들을 압도하고, 

천상의 힘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답이 아니었다.

"저는..." 가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그저 여러분과 같은 한 사람일 뿐입니다."

"거짓말쟁이!" 누군가가 외쳤다.
"사기꾼이야!"

첫 번째 돌이 날아들었다.



희생

가브리엘은 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돌을 그대로 맞았다.

그의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동시에 깊은 이해와 용서가 담겨 있었다.

"여러분..." 그가 쓰러지며 말했다.
"진정한 기적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세요. 나누세요. 용서하세요..."


가브리엘이 쓰러진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땅에 스며들자,

 메마른 대지에서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를 향해 던진 돌들이 빵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바로 그때, 

소녀가 울면서 앞으로 달려나왔다.
"멈추세요! 그분이 누구든 무슨 상관인가요?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셨어요. 

나눔을 보여주셨어요!"


소녀의 말에 사람들은 

점차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일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분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는데..."

그때, 

가브리엘의 몸에서 부드러운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천사의 위압적인 빛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빛이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가브리엘이 일어났다. 

그의 상처는 모두 사라져 있었다.

"제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충분히 강합니다.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들은 처음으로 진정한 기적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난 변화였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하늘이 갈라지며 어둠이 내려왔다. 

멸재판관과 달콤한 속삭임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가브리엘." 
환멸재판관이 비웃듯 말했다.
"결국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말았군요."

달콤한 속삭임이 사람들 주위를 맴돌며 속삭였다.
"보세요. 여러분은 속았어요. 

이 모든 것이 천상의 계획된 각본이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사람들이 가브리엘 앞으로 나섰다.

"더는 당신들의 말에 속지 않을 겁니다."
소녀가 외쳤다.
"우리는 이제 알아요. 진정한 기적이 무엇인지를..."

 


최후의 승리

환멸재판관이 검은 권능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파괴하겠소!"

그 순간, 가브리엘의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의 수정같이 투명한 날개가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힘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에서 피어난 빛이었다.

"보세요." 가브리엘이 미소지었다.
"이것이 진정한 힘입니다. 

사랑과 용서, 나눔에서 오는 힘..."

사람들의 마음에서 피어난 빛이 

어둠을 밀어냈다. 

환멸재판관과 달콤한 속삭임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다.

그는 천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제 떠나시는 건가요?"
소녀가 물었다.

"내 모습은 사라지지만, 

진정한 기적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돌보세요. 

그때마다 작은 기적들이 계속될 것입니다."

가브리엘이 사라진 후에도, 

마을에는 변화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서로를 돕고 나누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그때마다 작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것이 바로 가브리엘이 남긴 진정한 유산이었다. 

기적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작은 빛이었다.

 

 

에필로그: 천상의 훈련장, 수정같이 맑은 새벽.


"다시 한 번, 아별."
미카엘의 목소리는 엄격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아별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날개는 여전히 까맣게 빛났지만, 

이제 그 끝자락에는 미세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반년간의 훈련으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집중해. 너의 특별한 능력을 기억해야해."
미카엘이 말을 이었다.
"너는 양쪽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아별은 눈을 감았다. 

그의 주변으로 검은 안개와 

밝은 빛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이것이 그의 특별한 능력이었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건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미카엘의 말에 아별은 눈을 떴다.

"저는...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너는 악마로 태어났지만 천사의 마음을 가졌어. 

지옥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천상의 자비를 실천할 수 있지.

이런 존재는 창세 이래 처음이다."

멀리서 가브리엘이 

미소 지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별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어쩌면 이것이 진정한 계획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미카엘이 말했다.
"너의 변화가 완성되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하지만..."

그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면 네가 우리가 기다려온 해답일지도 모르지.

천상과 지옥의 끝없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아별은 자신의 날개를 펼쳤다. 

검은 깃털 사이로 

이제는 희미한 빛줄기가 스며들고 있었다.

"제가... 해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있는 거야."
뒤에서 가브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를 도우려고.

빛과 어둠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을..."

아별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더 이상 악마의 검은 눈물이 아닌,

맑은 크리스탈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먼 지평선 너머로 새로운 

시대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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