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3. 11:44ㆍ데스티니(사람의 운명은 만들어진다.)
제1부: 그림자의 시작
은밀한 관찰
루시엘은 수정궁전의 가장 높은 첨탑에 홀로 서있었다.
그의 은빛 날개는 달빛 아래 찬란히 빛났지만,
그의 마음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수정구슬을 통해 그는 이승에서의
가브리엘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한 번의 기적이군..."
그가 중얼거렸다.
영상 속에서 가브리엘은 죽어가던 아이를 살리고 있었다.
"나였다면... 나였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수호천사단의 회의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루시엘의 주변으로 젊은 천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날개는 여전히 빛났지만,
그 빛은 전과 달리 차갑게 느껴졌다.
"보셨나요?"
라파엘이라는 젊은 천사가 입을 열었다.
"가브리엘은 이제 공공연히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 칭합니다.
그리고 위의 분들은 그저 지켜보기만 하시죠."
"우리도 똑같은 능력이 있어요."
우리엘이 덧붙였다.
"어쩌면 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들도 있을 거예요."
루시엘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은빛 날개가 회의실을 환하게 비췄다.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순종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진정한 잠재력을 억눌러왔죠."
숨겨진 계획
지옥의 심층부에서는
이 모든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환멸재판관은 그의 검은 왕좌에 앉아
차가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보이시나요?"
달콤한 속삭임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천사들의 마음속에도 어둠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그래."
환멸재판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을 이승에 보낸 것은
우리에게 뜻밖의 선물이 되었군.
천상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루시엘이라... 흥미롭군."
운명서기관이 검은 잉크로 뭔가를 적어 내렸다.
"그의 마음속 질투는 순수하고 강렬하다.
우리의 완벽한 촉매가 될 것 같군."
수정궁전의 중심부,
대천사 미카엘의 집무실에서 긴급 회의가 열렸다.
"루시엘의 영향력이 걱정됩니다."
빛의 기록자가 말했다.
"그와 함께하는 천사들의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어요.
특히 젊은 천사들 사이에서..."
미카엘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일곱 쌍의 황금빛 날개가 불안하게 떨렸다.
"가브리엘의 소식은 어떻소?"
생명의 치유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기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도 변하고 있어요.
점점 더 큰 기적을 행하고 있고,
그를 따르는 인간들은 그를 신격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의의 수호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수정궁전 전체가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가 밖에서 소리쳤다.
"루시엘이 수호천사단을 이끌고 이승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수정궁전의 정문 앞.
루시엘은 수백 명의 천사들을 이끌고 서 있었다.
그들의 날개는 여전히 빛났지만, 그 빛은 이전과는 달랐다.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루시엘이 외쳤다.
"우리도 인간들을 도울 권리가 있습니다.
왜 한 명에게만 그런 특권이 주어져야 합니까?"
미카엘이 정문 앞에 나타났다.
"멈추시오, 루시엘.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까?"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루시엘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
"저는 불공평함에 맞서 싸우려 합니다.
천상의 오래된 편견에 도전하려 합니다."
지옥의 세력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달콤한 속삭임은 루시엘의 꿈속으로 살며시 스며들었다.
"당신의 생각이 맞아요... 당신은 특별해요.
어쩌면 가브리엘보다 더 위대한 존재일지도 모르죠."
환멸재판관은 검은 안개를 퍼트려
수호천사단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었다.
"그들은 당신들을 속박하고 있어요.
당신들의 진정한 잠재력을 억누르고 있죠."
루시엘의 은빛 날개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끝부분이 미세하게 검어지고 있었다.
가브리엘의 고민
한편 이승에서,
가브리엘은 자신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사람들이 그를 신격화하기 시작했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새로운 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정말 올바른 걸까..."
그가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한 소녀가 다가왔다.
그가 처음 기적을 행했던 마을의 소녀였다.
"선생님, 무슨 고민이 있으신가요?"
가브리엘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는 단지 사랑과 자비를 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어."
수정궁전 앞,
대치 상황은 계속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겠소, 루시엘."
미카엘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렸다.
"당신이 지금 넘으려는 선은, 돌이킬 수 없는 선입니다."
루시엘이 비웃듯 답했다.
"돌이킬 수 없다요?
가브리엘은 그 선을 넘어도 괜찮았잖습니까?"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루시엘의 날개가 갑자기 강렬한 은빛으로 빛나더니,
수정궁전의 결계를 관통하는 빛줄기를 방출했다.
천상과 이승을 구분 짓는 신성한 장벽에
최초의 균열이 생긴 것이다.
"안 돼!"
빛의 기록자가 외쳤다.
"결계가 무너지면 천상의 질서가..."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균열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루시엘은 자신을 따르는 천사들과 함께 그 틈을 통해
이승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혼돈의 시작
이승의 하늘이 갈라졌다.
수백 명의 천사들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장관이었지만, 동시에 두려움을 자아냈다.
가브리엘은 이 광경을 바라보며 얼어붙었다.
"이럴 순 없어..."
루시엘이 가장 먼저 땅에 발을 디뎠다.
그의 눈빛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 우리도 당신처럼 할 수 있어요,
가브리엘. 우리도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요."
인간들은 혼란에 빠졌다.
한 명의 구원자도 감당하기 힘들었는데,
이제 수백 명의 천사들이 나타난 것이다.
환멸재판관의 집무실에서는 작은 축하연이 벌어지고 있었다.
"완벽해."
그가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천상의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승은 혼돈에 빠질 것이며..."
달콤한 속삭임이 미소 지었다.
"가장 아름다운 건, 그들 스스로가 이 일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자 우리 신입생 모집할 준비나 하자고"
대립의 시작
가브리엘은 루시엘과 마주 섰다.
두 천사의 기운이 충돌하며 하늘이 울렸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죠, 루시엘?"
가브리엘의 목소리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당신이 먼저 시작했잖아요."
루시엘이 차갑게 답했다.
"당신은 홀로 영광을 누리며,
우리를 속박된 채로 두려 했죠.
하지만 이제는 달라질 겁니다."
루시엘을 따르는 천사들이 각지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기적을 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기적은 가브리엘의 것과는 달랐다.
더 화려하고, 더 강력했지만... 어딘가 차가웠다.
"제 아이를 살려주세요!"
한 여인이 울부짖었다.
세 명의 천사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각자 다른 방식의 치유를 제안했고,
서로의 방식이 최선이라며 다투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어느 천사를 따라야 할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보이시나요?"
달콤한 속삭임이 인간들의 귓가에 속삭였다.
"천사들조차 하나가 되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빛의 기록자의 두루마리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천사들의 분열은 인간들의 믿음마저 흔들어놓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생명의 치유자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인간들의 영혼이 완전히 어둠에 물들 것 같아요."
미카엘은 고민에 빠졌다.
루시엘 일행을 강제로 데려올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천사들 간의 전쟁이 불가피했다.
내면의 어둠
루시엘의 변화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졌다.
그의 은빛 날개는 이제 절반이 검게 변해있었다.
그가 행하는 기적들도 변했다.
병을 고치는 대신 더 강한 힘을 주었고,
평화 대신 힘을 가르쳤다.
"우리는 더 이상 약하지 않아요."
루시엘이 그를 따르는 이들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작은 빛이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밤마다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
한편 가브리엘은 점점 더 고립되어 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더 화려한 기적을 보여주는
다른 천사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실패한 걸까..."
그가 홀로 중얼거렸다.
그때 그 소녀가 다시 찾아왔다.
"선생님, 사람들이 변했어요.
더 이상 서로를 돕지 않아요.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어요."
가브리엘은 소녀의 순수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두 개의 세력
이승은 이제 두 개의 큰 흐름으로 나뉘었다.
가브리엘을 따르는 이들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다.
반면 루시엘을 따르는 이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났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계속해서 분열이 일어났다.
"완벽해요."
달콤한 속삭임이 환멸재판관에게 보고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어요."
루시엘의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의 추종자들은 이제 단순한 기적을 넘어,
인간들에게 천상의 비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진 힘을 나눠주는 거예요."
루시엘이 선언했다.
"인간들도 스스로 기적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등이죠."
하지만 이는 천상의 가장 큰 금기를 깨는 일이었다.
그의 날개는 이제 거의 대부분이 검게 변해있었고,
그를 따르는 천사들의 날개도 점점 어두워져 갔다.
마지막 경고
미카엘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직접 이승으로 내려와 루시엘을 마주했다.
"돌아가시오, 루시엘. 아직은 늦지 않았소."
미카엘의 일곱 쌍의 날개가 찬란히 빛났다.
루시엘이 비웃듯 답했다.
"늦었다요? 아니요, 이제 겨우 시작입니다.
보세요, 인간들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주변에는 천사들의 가르침을 받은 인간들이 서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는 기적의 빛이 새어 나왔지만,
그 빛은 어딘가 불순했다.
빛의 기록자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그의 수천 개의 눈이 동시에 미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입니다... 끔찍한 미래가..."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루시엘... 당신은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어요."
"그가 누구입니까?"
미카엘이 물었지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최초의 타락한 자... 지금의 악마의 왕, 루시퍼..."
에필로그: 최초의 타락
지옥의 가장 깊은 곳,
영원한 어둠이 감도는 왕좌실에서
루시퍼는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의 새까만 날개는 한때 천상에서 가장 찬란했던 날개였다.
"역사는 반복되는군..."
그가 중얼거렸다.
수천 년 전,
그도 한때는 '빛을 전하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가장 아름다운 천사였다.
그의 황금빛 날개는 태양처럼 빛났고,
그의 목소리는 천상의 하모니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랬다.
한 특별한 천사가 선택받았고,
그의 마음에 질투가 피어났다.
처음에는 작은 의문이었다.
'왜 그이지? 왜 나는 아닌 거지?'
그 의문은 점차 커져갔고,
마침내 반역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루시엘처럼,
그도 많은 천사들을 이끌고 반기를 들었다.
"다들 기억하시나요?"
루시퍼가 그의 측근 악마들에게 물었다.
"우리가 한때 어떤 존재였는지..."
달콤한 속삭임, 환멸재판관...
그들도 한때는 찬란한 천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날개는 완전히 검게 변해있었다.
"가장 순수한 존재가 타락할 때..."
루시퍼가 미소 지었다.
"가장 깊은 어둠이 된다는 걸 나는 잘 알지."
그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거대한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자, 이제 새로운 동료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군.
루시엘... 그도 곧 우리처럼 될 테니."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떨어졌다. 마치 눈물처럼.
"기억하나요, 아버지?"
루시퍼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속삭였다.
"당신의 가장 사랑받는 아들이 어떻게 악마의 왕이 되었는지..."
그의 눈에서 검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원한 어둠 속에서도,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주 작은 빛이 남아있었다.
그것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고통이자,
그가 한때 천사였다는 증거였다.
"이제 지켜보시죠...
또 하나의 나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천상에서는 루시엘의 날개가 점점 더 검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역사는 다시 한번 반복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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