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의 온기

2025. 2. 12. 09:20하루하루 에세이

 

 

 

"연탄재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군가를 위해 몸을 태워 따뜻하게 해 본 적이 있었나."

 

안도현 시인의 이 시구가 생각나는 겨울 아침이었다. 새해의 첫 주말, 나는 구룡마을로 향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강남의 빌딩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이곳에, 아직도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러 봉사자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지만, 그중에는 눈에 띄는 젊은이들도 있었다. 83년생 친구들이라고 했다. 대학 동문들이 모여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시작한 봉사 모임이라고 했다. 술자리가 아닌 봉사로 만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연탄 창고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은 잊을 수 없다. 높이 쌓인 연탄들이 시간을 멈춘 듯한 흑백 사진처럼 보였다. 처음에는 '별것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1,600장의 연탄을 나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한 장이 3.5kg, 그것을 조심스럽게 옮기는 일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연탄을 나르다 보니, 주민들과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에서 읽히는 감정은 참으로 복잡했다. 고마움과 미안함,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한 할머니가 계속 우리를 걱정하셨다. "추운데 고생이 많네요. 쉬었다 하세요." 걱정하시는 그 마음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검은 먼지는 어느새 우리의 옷과 얼굴에 가득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숨쉬기가 힘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매일 연탄을 다뤄야 하는 주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에게는 하루의 봉사지만, 누군가에게는 피할 수 없는 일상이라 생각되었다. 

 

봉사를 마치고 가진 술자리는 의미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 다른 이야기들이 오갔다.  진정한 봉사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한 봉사 현장이 아닌,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 강남구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이곳보다,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웃들은 어떨까.

 

우리 주변에는 6.25 참전용사들, 위안부 할머니들,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이 계신다. 때로는 하루 한 끼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이런 분들을 위한 봉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우리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

 

한 봉사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진정한 봉사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것 같아요?" 그의 말에 공감했다. SNS에 올릴 사진에 열중인 봉사자들에게 불편한 마음이 떠올랐다.

 

밤이 깊어갈수록 우리의 대화는 더욱 진지해졌다. 연탄 한 장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주제들이 오갔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 복지의 사각지대, 진정한 나눔의 의미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마침내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내년부터는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 정기적인 봉사를 하기로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옷에 묻은 연탄 먼지를 털어내며 생각했다. 오늘 경험은 단순한 봉사 활동 그 이상이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마주하고,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기회였다. 연탄이 자신의 몸을 태워 타인에게 온기를 전하듯, 우리의 봉사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다음 날 아침, 거울 속에 비친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은 먼지 자국을 발견했다. 작은 훈장 같았다. 어제의 경험을 증명하는 작은 표식. 그것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듯했다. 

 

오늘도 어디선가 연탄을 나르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추운 겨울, 자신의 온기를 나누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발자국을 따라, 우리도 조금씩 전진해 나가려 한다. 진정한 나눔의 의미를 찾아서,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연탄재를 발로 차지 말라는 시인의 말이 더욱 깊이 와닿는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의 의미를 배웠다. 한 장의 연탄이 방 하나를 데우듯, 작은 관심과 사랑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더 진실된 마음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우리의 작은 실천이 따뜻한 봄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연탄 한 장에 담긴 따뜻한 온기처럼, 우리의 봉사도 그렇게 순수하고 진실되기를 바란다.

 

연탄의 온기


검은 먼지 속,

시간이 멈춘 듯한 

골목에서
우리는 삶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

아무도 모르게

전달하는 온기가
진실이라는 걸 배웠다

거울 속 지워지지 않는
먼지 자국은

우리가 가야 할 길

우리가 살아 갈 길

봄이 오면 꽃이 피듯
작은정성 모아지면

온기가 퍼져나가

누군가의 빛이 되길

한 장의 연탄이
자신을 태운 온기처럼
우리도 그렇게
서로의 봄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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